[함께할 50년:이웃 커뮤니티 성공 사례] 온 커뮤니티 합심, 100년 열 프로젝트 착착
"이 프로젝트를 실현하기 위해 마을 전체가 필요했습니다. 풀뿌리 지지자부터 비전 있는 선출 공무원, 큰 기부자부터 작은 기부자, 여러 정부 기관, 재단, 기업 파트너까지 모두가 함께 했습니다." 2022년 3월 리틀 도쿄 서비스 센터(LTSC)의 에리히 나카노 회장은 감격에 젖은 성명을 발표했다. 이날은 리틀도쿄의 반세기 숙원이었던 ‘부도칸(Budokan·무도관)’의 공식 개장을 알리는 날이었다. 부도칸은 리틀도쿄에 단순한 체육관 그 이상이다. 라이언 리 부도칸 디렉터는 이를 "리틀도쿄의 흔들리지 않는 힘에 대한 증거이며, 우리 정신이 미래 세대까지 지속될 수 있도록 하는 발판이다"라고 설명했다. 일본계 커뮤니티는 부도칸을 발판삼아 또 하나의 성공을 이룩했다. 대규모 프로젝트 중 하나인 ‘퍼스트 스트리트 노스(First Street North)’. 지난 2월 첫 삽을 뜬 이 프로젝트는 리틀도쿄가 확보하고자 했던 정부 땅 3곳 중 1곳이다. 1가 선상 LA시 주차장으로 방치된 2.5에이커 부지에 1억6800만 달러 규모의 복합 단지를 건설하는 것이 골자다. 여기엔 저소득 주택과 공원, 상업 공간, 그리고 2차 세계대전 일본계 미국인 참전용사 기념관이 조성되며 2026년 완공을 앞두고 있다. LA타임스는 "10년이 넘는 협상을 포함한 그들의 노력은 2018년에 거리 시위, 청원, 미술 전시 등 일련의 집단행동으로 정점을 이루었고, 이를 통해 시 당국자들의 최종 승인을 얻었다"고 최근 보도했다. 리틀도쿄는 연이은 프로젝트의 성공과 함께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데이비드 이케가미 리틀도쿄 비즈니스 협회(LTBA) 회장은 "주말에 와보면 알 수 있듯 리틀도쿄는 찾는 사람들로 북적거린다"며 "이 작은 구역에 약 400개의 업소가 활발히 운영 중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오랜 이민 역사로 쇠퇴하는 모습이 있는가 하면, 이면에는 새로운 미래를 시작하는 리틀도쿄가 있다"고 덧붙였다. 2012년, 난개발 등으로 멸종위기를 직감한 리틀도쿄는 탈출구를 찾기 위해 범커뮤니티협의체를 구성했다. 일미상공회의소, 일미문화커뮤니티센터(JACCC), 일미박물관 등 30여 개 일본계 대표단체를 비롯해 사찰과 교회 등 종교기관, 식당, 동네빵집, 커피점, 마켓까지 참여했다. 그리고 2년간 그들의 의견을 모두 모아 500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보고서를 내놨다. 향후 100년을 준비한 이 보고서 이름은 ‘지속가능한 리틀도쿄(Sustainable Little Tokyo·SLT)’. 부도칸은 SLT의 핵심 사업 중 하나였다. 당시 LTSC의 토머스 이 도시기획국장은 리틀도쿄가 겪고 있던 어려움이 ‘위기’가 아닌 오히려 완벽한 ‘기회’였다고 전했다. 그는 "리틀도쿄의 미래 청사진에 대한 주민들의 의견을 크고 분명하게 알릴 수 있는 때가 온 것"이라고 덧붙였다. SLT는 리틀도쿄의 개발 방향을 ▶개요 ▶리틀도쿄의 현재와 미래 분석 ▶지역사회 기반의 타운 디자인 ▶리틀도쿄의 비전 ▶기폭제와 향후 단계 등 5개 부분에 걸쳐 제시했다. 그리고 불과 3곳밖에 남지 않았던 정부땅을 지목해 난개발을 막고 리틀도쿄의 방향을 제시했다. 현재 퍼스트 스트리트 노스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는 ‘1가’, 그리고 ‘맨그로브길’, ‘메트로 리저널커넥터역’이다. 보고서에서 SLT는 "개발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공존의 길을 찾기 위해서"라고 목적을 정확히 밝혔다. 보고서에 담긴 계획들이 실현되는 데는 10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3500만 달러를 모금해 2020년 완공시킨 부도칸은 SLT의 성공적인 출발을 알렸다. 당시 커뮤니티가 한마음으로 동참했다. 재력가들도 앞다퉈 기부했다. 부도칸의 정식 명칭은 ‘테라사키 부도칸’으로, 장기 조직 유형 검사법을 발명한 고 폴 테라사키 전 UCLA 교수 가족이 350만 달러 거액을 기부해 명명되었다.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힘을 보탰다. 초등학생들은 볼링 토너먼트를 열어 9000달러를 모았고, 50년 넘게 노인 아파트에 살다가 본국으로 귀국한 할머니는 장롱 속 1000달러를 내놓았다. 이케가미 LTBA 회장은 "유산을 보존하고 공동체 의식을 갖는 것은 일본인에게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 경쟁보단 ‘함께’에 가치를 둔다"며 "리틀도쿄를 가꾸고 보존하는 일은 세대를 거듭하여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난개발은 소수계 커뮤니티에 위협으로 다가온다. 색깔을 지우고 정체성을 흐리게 만든다는 우려다. LA 한인타운도 예외는 아니다. LA시 건물안전국(LADBS)에 따르면 LA한인타운에서 지난 4년간 허가받은 아파트 신축 프로젝트는 40건에 달한다. 타운을 대표했던 오랜 업소들은 줄줄이 문을 닫고 있다. 리틀도쿄 역시 난개발에 봉착했지만, 그들은 위기를 기회로 바꿨다. 흔들리는 현재를 보고 커뮤니티가 뭉칠 적기라 여겼고, 모두가 모여 과감하게 미래를 그렸다. ‘함께’의 힘으로 그려낸 리틀도쿄의 100년 미래는 이제 현실이 되고 있다. 장수아 기자 ━ 중국·아르메니아계도 역사 세우기로 구심점 형성 중국계 2003년에 박물관 개관 학살 희생자 추모비 추진 아르메니아계 대학살 100주기에 추진해 2026년 박물관 완공 예정 LA 한인타운 근교에는 역경을 딛고 성장한 여러 소수민족 커뮤니티들이 있다. 한인보다 앞선 이민 역사를 가진 이들은 미국이란 머나먼 땅에서 탄압과 배척을 이겨내고 자신들의 커뮤니티를 공고하게 세우며 성장을 이뤄냈다. 오랜 이민 역사를 가진 소수민족 중 하나인 중국계 커뮤니티는 아픈 역사를 바탕으로 단합을 이뤄냈다. 원래의 차이나타운(올드 차이나타운)은 유니언역이 있던 곳이다. 현재 차이나타운보다 남동쪽으로 1마일 거리에 위치해 있었다. 1882년부터 1943년까지 시행된 ‘중국인 배척법’은 중국계 주민들에게 시민권을 가질 수 있는 권리를 박탈했고, 토지 소유도 금지했다. 그들의 보금자리였던 올드 차이나타운도 이때 유니언 터미널 건설을 이유로 철거되었다. 역사적 아픔은 새로운 시작의 발판이 되었다. 후세들은 ‘역사 보존과 공유’에 공감했다. 1992년부터 이동식 전시회를 통해 유물을 기증받아 대중과 소통해왔다. 이 노력은 2003년 ‘중국계 미국인 박물관(CAM)’의 개관으로 이어졌다. CAM의 미디어 담당 엘렌 엔도는 “갈등이 있어도 과거를 연구하고 보존하며 공유하겠다는 공동의 목표를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박물관을 찾은 새로운 이민자와 관광객들은 자신들의 뿌리에 대한 자부심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현재 중국계 커뮤니티는 1871년 학살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기념비 건립을 추진하고 있으며, LA시는 이를 위해 25만 달러를 배정했다. 아르메니아계 커뮤니티는 인구가 46만 명으로 한인의 4분의 1이지만 주류 사회에서는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2021년에는 글렌데일에 6만 스퀘어피트 규모의 아르메니아계 미국인 박물관(AAM)을 착공, 2026년 완공을 앞두고 있다. 박물관은 아르메니아인 대학살 100주기를 맞아 건립이 추진됐다. 아르메니아인 대학살은 1915년 오스만 제국(현재의 튀르키예)이 자국 내 소수 민족인 아르메니아인 약 100만 명 이상을 집단 추방하고 학살한 사건이다. 제이븐 카자지안 AAM 부관장은 “박물관은 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보고, 이해하며, 배우는 공간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취지를 설명했다. 본국 아르메니아의 영토 분쟁과 관련된 연방 차원의 지원에도 영향력을 미치며, 본국에 대한 높은 관심과 로비 활동을 통해 강한 유대감을 보여주고 있다. 이에 대해 아람 햄파리온 전미 아르메니아 위원회(ANCA) 워싱턴 DC 지부장은 “아르메니아계 10명 중 7명은 본토인 아르메니아 밖에서 거주한다”면서도 “본국을 향한 높은 관심과 정책 로비 활동은 아르메니아인에게 본국에 대한 강한 애착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재선·정윤재 기자함께할 50년:이웃 커뮤니티 성공 사례 일본 프로젝트 일미상공회의소 일미문화커뮤니티센터 리틀도쿄 비즈니스 대규모 프로젝트